2020년 겨울. 내전 중인 미국의 메이가니주.
최악의 전쟁
전쟁은 마치 소설 속 첫 문장과 같이 불현듯 일어났다.
그 어떤 극적인 서사도 없이 시민들의 반수가 단 한번의 폭격으로 사라진 그 날, 우리는 아직도 그 날의 폭격음을 잊지 못한다. 세 달 전 시작된 내전은 미국 북부지역 군부대 연합에 의해 아주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로 발발했다.
몇 세대에 걸친 정부의 소극적 체제에 대한 반발.
대부분의 시민들은 내전의 징조조차 알지 못했다. 바로 그 전 날까지도 미국은 자유의 나라라는 이름을 표방하듯 공항을 운영하고, 대통령의 연설이 있었으며,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.
이 무슨 블랙코미디인지.
그 평화와 평등을 비웃기라도하듯 미국 북동부에 위치한 메이가니주가 군인들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기까지는 폭격 이후로부터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.
병들어가는 시민들
폭격 이후 생존한 사람들은 급격히 패닉에 빠졌고 빠져나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.
그러나 대부분의 내전 중 고립된 도시들이 그렇듯, 고립 초반엔 군인들의 눈을 피한 탈출구가 존재하기도 했지만
그마저도 몇 명의 수용 인원이 차면 금세 막혀버렸고 재수없게 들키기라도 했다가 벌집이 되는 경우도 빈번했다.
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곳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.
하지만 더 이상 전기와 가스, 수도는 공급되지 않았고, 물자는 한정되어 있었다.
정부에 대한 경고 마냥 불시에 떨어지는 소규모 공습들은 쉽게도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고,
군인들에게 우리는 더이상 지켜야 할 국민이 아닌, 언제든 심심풀이로 죽일 수 있는 한낱 인질에 불과 했다.
사람들은 쉽게 병들어갔고, 살 의지가 있는 이들은 살기 위해 자신들만의 무리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.
그리고 이 곳 도시 동부에 위치한 이스트그레이 1번가에 모여든 사람들도 그러했다.
폭격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그 거리에 거의 유일하다시피 건물이라는 형태를 갖춘 곳.
우리는 그곳을 '집'이라 불렀다.
122E 1st Street EastGray. MG
폭격으로 인해 살 곳을 잃은 사람,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판단에 집을 나온 사람, 또는 외부에서 왔다가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. 사람들은 모두 무리를 찾아 속해야 했고, 우리 또한 각기 다른 시기, 각자의 경유로 이 집에 모인 이들이었다. 오직 '살기 위해'.
6개의 큰 대로로 이루어진 이스트그레이의 첫번째 거리, 1번가에 위치한 3층짜리 가정집.
집주인인 벤틀리 존슨에 의해 개방 된 이 곳이 바로 우리의 거처이다.
주택가로 이루어진 이곳에 폭격이 떨어졌을 때,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을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.
주변의 모든 집들은 반 이상이 파손되어있고 여지껏 우리는 이 주변의 집들에서 물건들을 조달하며 하루하루 버텨왔다.
우리에게 남은 이웃이라고는 이따금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도둑고양이들과 달갑지 않은 강도들 뿐일 것이다.
언제까지 이대로 버틸 수 있을까?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. 살아남고 말 것이다.